시승

[시승기]현대차의 마지막 플래그십 세단 '에쿠스'를 타다

기사승인 [2015-11-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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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에쿠스
VI FL_VS 500 메인 대시

아시아투데이 홍정원 기자 = 2011년 10월 5일, 애플의 창업주 스티븐 잡스가 사망하자 그의 유작인 아이폰 4S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잡스의 철학과 아이디어, 그리고 기술이 총집결된 폰이라는 찬사와 함께.

2015년 11월 4일, 현대자동차가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를 출범했다. 다음달 예고된 신형 에쿠스는 이제 G90(국내 한정 EQ900)라는 이름을 달고 제네시스 브랜드에 편입된다. 이에 따라 지금 거리에 돌아다니고 있는 2세대 에쿠스가 ‘현대’ 브랜드의 마지막 에쿠스가 됐다. 에쿠스는 대통령의 의전용으로 쓰이는 차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전용차이기도 하다. 타는 사람에 걸맞는 품격을 갖췄다. 현대차의 철학과 기술, 자존심이 총집결됐다.

마지막 에쿠스, 2세대 에쿠스 3.8 익스클루시브를 빌렸다.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운전석에 앉았다. 에쿠스의 안은 밖에서 보기보다 훨씬 컸다. 조수석 쪽으로 상체를 한껏 기울여 팔을 뻗어봤지만 저쪽 끝까지 손이 닿지 않았다. 소파만큼이나 크고 안락한 시트에 몸이 푹 잠겼다. 운전대도 컸다. 정수리와 천장 사이 공간은 한 뼘이 넘게 남았다.

실제 운전해본 에쿠스는 더 컸다. 일단 몸동작이 컸다. 방향을 틀면 보닛 위에 붙은 참새모양 장식물이 저 멀리서 천천히 큰 동그라미를 그린다. 답답하지는 않았다. 큰 배가 물 위를 미끄러지는 모습이 연상됐다. 부드러웠다. 가속패달은 묵직했다. 핸들링도 묵직했다. 힘을 줘 속도를 올려도 촐삭거리는 법이 없었다. 무겁게 가라앉으며 속도가 붙었다. 계기판에 표시된 속도는 금새 시속 100㎞를 넘어섰다.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듯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운전모드는 스포츠, 노멀, 에코 3가지가 지원된다. 고속도로 구간은 거의 대부분 스포츠모드로 달렸다. 반응이 확실히 민첩해졌다. 엑셀을 밟은 오른쪽 발에 부담이 조금 줄어들었다. 양 옆으로 차들이 쉭쉭 지나간다 싶었다. 어느새 속도가 시속 140㎞까지 올라와 있었다. 여전히 고요했다.

속도가 올라가도, 급커브를 돌아도 긴장감이 들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뒷자리 상석에 자리잡은 동승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다리를 쭉 편 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왠만한 차를 타도 멀미를 하는 체질인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창문 한 번 여는 법이 없었다.

이번 시승코스는 서울~춘천을 오가는 약 250㎞구간. 강원도에 들어서니 꼬불꼬불한 산길이 연이어 펼쳐졌다. 구간구간마다 설치된 방지턱이 꽤 높았다. 내리막에서 한참 속도가 붙었다가 방지턱 앞에서 확 속도를 줄여야했다. 급감속을 할 때도, 높은 턱을 넘을 때도 뒷자리 동승자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길이 얼마나 험한지 도통 모르는 눈치였다.

밤 늦게 서울을 떠난 터라 다음날 아침이 되서야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윤기가 흐르는 우람한 흑마가 연상됐다. 에쿠스는 라틴어로 ‘개선장군의 말’을 뜻한다. 이름 그대로 그랬다. 전장에서 승리하고 온 장군의 이미지와 그 장군이 타는 말의 이미지가 동시에 떠올랐다.

내부 인테리어도 말할 나위 없었다. ‘최고급’이라는 형용사 이외의 다른 표현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어두운 갈색 가죽이 실내를 포근하게 감싼 가운데 원목 재질 우드트림이 전자식 기어박스와 함께 세련미를 더한다. 센터페시아 한 가운데 설치된 아날로그 시계는 화룡점정.

나흘간 시승하면서 실제 연비는 7.9㎞/ℓ가 나왔다. 공인연비(8.9 km/ℓ)와 비교하면 리터당 1㎞가량 덜 나왔지만, 이 급의 다른 차와 비교해보면 나쁘지 않은 편이다. 가격은 트림과 옵션에 따라 6000만원 후반에서 1억원 사이다. 기자가 시승한 익스클루시브 모델은 9295만원짜리다. 동급 수입차와 비교하면 확실히 싸다. 이달에 사면 10%를 할인해준다.

최고급이란 단어를 매일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차를 추천한다.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면 확실히 운전석보다 뒷자리가 빛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