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똑같은 세 쌍둥이? 벤츠 E클래스 디자인은 실망인가?

수평적 친화력 절정, 덩치 작은 S클래스 쌍둥이
패밀리룩, 브랜드 보수성 적용하는데 효율적

기사승인 [2016-02-18 14:11]

  • 확대
  • 축소
  • 인쇄
  • facebook
메인
벤츠의 패밀리룩. C·E·S클래스라는 각기 다른 모델의 디자인을 정체성 면에서 통일한다/제공=벤츠

모빌리스타 이준호 칼럼니스트 = 신형 E클래스가 나오면서 S와 C클래스와 유사한 디자인 때문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부정적인 의견이 대세인데 벤츠의 역사를 들여다 본다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변화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수석 디자이너인 고든 바그너는 2014년 플래그십인 S클래스의 디자인 언어를 세단 세그먼트의 엔트리 모델인 C클래스에 상당부분 그대로 적용하면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플래그십만이 가져야 할 우월한 디자인 요소가 퇴색했다는 우려가 많았다. 베이비 S클래스란 별칭이 붙은 C클래스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 예상했다. 아울러 풀체인지를 앞뒀던 E클래스 디자인 역시 같은 길을 걷지 않겠냐는 예측도 나왔다.

Mercedes-Benz S 400 HYBRID (W 222) 2013
벤츠 S클래스/제공=벤츠
Mercedes-Benz C 300 BlueTEC HYBRID, (W205),
2013
벤츠 C클래스/제공=벤츠

2016년 1월 11일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E클래스가 얼굴을 내밀자 많은 이들이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플래그십과 중형급 그리고 엔트리 모델의 디자인에서 강한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패밀리룩은 독일 브랜드가 프리미엄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기 위해 디자인에 주로 쓰는 방식이다. 패밀리룩 추구는 각기 다른 모델의 디자인을 정체성 면에서 통일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S·C클래스와 닮은 E클래스의 등장으로 벤츠의 대량 판매 모델 라인업에 ‘과한 패밀리룩’이라는 평가가 잇따른다.

벤츠 E클래스
벤츠 신형 E클래스. S와 C클래스와 닮은 디자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제공=벤츠

부정적인 의견이 대세인데 그들의 역사를 들여다본다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변화라 여겨진다. 벤츠는 보수적 이미지가 강한 브랜드다. 후드와 그릴에 엠블럼을 두 개나 장식하고, CI 폰트로 사용한 로만체는 클래식을 대표하는 보수성향 그래픽이다.

특히 고틀리프 다임러와 칼 벤츠가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개발했다는 사실에서 나온 자신감은 보수성의 근간이 된다. 그들은 자사 박물관 입구에 ‘우리가 자동차를 개발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말을 타고 다녔다’는 의미로 박제된 말을 전시해놓았다.

4-벤츠 최초 자동차
고틀리프 다임러와 칼 벤츠가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개발했다는 사실에서 나온 자신감은 벤츠 보수성의 근간이다/제공=벤츠

패밀리룩은 이런 브랜드의 보수성을 디자인에 적용하는데 효율적이다. 보수는 변화와 혁신과는 상반된 의미다. 브루노 사코는 패미리룩을 통해 메르세데스 벤츠에 보수성을 확립시킨 디자이너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카로체리아 기아와 피닌파리나를 거쳐 1958년 스타일리스트로 다임러 벤츠에 입사했다. 1975년 수석 디자이너에 임명됐다.

1970년대는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다. 차체 보호에 보행자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역할이 더해졌다. 범퍼가 철제에서 우레탄으로 바뀌면서 차체와 범퍼가 하나가 되는 유니보디 디자인이 탄생했다. 범퍼도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로서 캐릭터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됐다. 자동차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바꾼 의미심장한 계기였다.

5-브루노 사코 (2)
브루노 사코는 패미리룩을 통해 메르세데스 벤츠에 보수성을 확립시킨 디자이너다/제공=벤츠

브루노 사코는 창업자 고틀리프 다임러가 제창한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Nothing but the best)라는 기업 철학에 ‘메르세데스 벤츠는 항상 메르세데스 벤츠처럼 보여야 한다’(A Mercedes-Benz must always look like a Mercedes-Benz)는 새로운 이념을 주입했다.

성숙한 기계 기술의 바탕 위에 더한 디자인의 미적 가치는 브랜드 완성도를 높이는 밑거름이었다. 브루노 사코의 시야는 1970년대 D·E 세그먼트의 리뉴얼을 통해 규모의 확장을 이루려는 벤츠에 중요한 정신적 토대로 작용했다.

6-190E (2)
벤츠는 190E를 통해 E세그먼트를 새롭게 현대화했다/제공=벤츠

190E(W123)를 통해 E세그먼트를 현대화(범퍼의 유니보디화) 하려는 벤츠에게 파격적인 디자인은 보수적 브랜드 이미지에 적합하지 않았다. 특히 1982년에 등장한 W201 모델은 벤츠 최초의 D세그먼트를 위한 엔트리 모델이었다. W123과 W201은 C·E·S클래스로 라인업을 나눠 볼륨을 넓히려는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모델이었다.

7-W116 (1)
W116 S클래스는 부르노 사코 패밀리룩의 핵심 모델이다/제공=벤츠

이런 시기에 시험대에 오른 수석 디자이너인 브루노 사코는 성공을 위한 개념으로 ‘메르세데스 벤츠는 항상 메르세데스 벤츠처럼 보여야 한다’를 들고 나왔다. 이미 성공적인 리뉴얼을 끝낸 S클래스(W116)의 디자인을 E클래스(W123)에 이식하는 일은 보수적인 벤츠의 모습을 확립하는데 최적이었다. 패밀리룩은 이렇게 탄생했다.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사코가 제시한 패밀리룩 디자인 철학에는 핵심적인 두 가지 법칙이 존재한다.

수평적 친화력(Horizontal affinity)
수평적 친화력은 메이커가 생산하는 모델들의 스타일링 큐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세그먼트가 달라도 서로 강한 시각적 연관성이 존재한다. ‘모델들 사이에 디자인이 비슷하다’는 현대적 패밀리룩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때에는 수평적 친화력이란 단어가 매우 적절하다.

당시 브루노 사코가 실천에 옮긴 수평적 친화력은 훨씬 더 방대하고 강력했다. 그가 수석 디자이너로서 선보인 결과물인 E클래스(W123, 1976~1986년)와 S클래스(W116, 1972~1980년)는 다른 점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로 디자인에서 친화력이 높다.

7-W123
W123 E클래스는 W116 S클래스와 판박이처럼 닮았다/제공=벤츠

자동차를 볼 때, 가장 먼저 시선이 간다는 프런트 디자인의 캐릭터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가 책임진다. 브루노 사코 1세대 때 E와 S클래스의 전면부는 아주 똑같다고 할 정도로 닮았다.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 역시 동일하다. 차이점은 크기와 후진등의 레이아웃 정도일 뿐이다. 특히 측면뷰에서는 S클래스의 휠베이스를 줄여 E클래스를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두 클래스에 차이점이 없지는 않다. S클래스에는 크롬 디테일을 장식적으로 추가해 고급스러움을 배가시켰다. 장식의 추가뿐만 아니라 표현을 달리해 차이점을 만들었다. 리뉴얼된 S클래스는 보디 옆 라인에 크롬 디테일을 덧대 시선의 무게중심을 낮춰 중후함을 강조했다.

E클래스는 크롬 디테일을 사용해 플래그십과는 차별화된 산뜻한 분위기를 표현한다. 그렇다고 저급한가? 중후함이 덜할 뿐 수평적 친화력의 요소로 사용한 크롬 디테일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고급스러움을 공유하는 매개체다.

8-W124
W124 E클래스/제공=벤츠
Archivnummer: 84F92
W201 C클래스/제공=벤츠.

브루노 사코 2세대에 와서는 엔트리 세단 모델인 C클래스의 원형 W201이 등장한다. 아울러 E클래스는 W124로, S클래스는 W126으로 풀체인지가 이뤄진다. 그리고 이 세 모델의 구분은 더욱더 모호해진다. 세그먼트의 구분은 크기에 따라 달리한다는 근본적 원칙에 집착한 결과물로 보인다.

8-W126
W126 S클래스의 등장으로 모델 사이에 구분은 더 모호해졌다/제공=벤츠

세 모델은 벤츠라는 아이덴티티를 일란성 쌍둥이처럼 유전적으로 공유하지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다른 개성이 존재한다. 플래그십의 아이덴티티를 공유함으로써 엔트리급의 프리미엄화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수직적 친화력(Vertical affinity)
수직적 친화력은 수평적 친화력과는 반대개념이다. 수직과 수평의 그래프를 나누는 방정식의 대입 값으로 세대를 넣었다. 즉, 같은 세대에서의 디자인은 수평적으로 디자인을 공유하지만 다른 세대 간의 디자인은 달라야 한다. 역대 성공한 모델이나 위대해서 영구히 보존하고픈 형태를 답습한 디자인은 쓸모 없다고 여겼다.

1995년에 등장한 새로운 E클래스인 W210을 보자. 벤츠에 패밀리룩을 대입시킨 수석 디자이너의 결과물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파격적이다. 자신의 역작이라 할 190E의 디자인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 세대를 넘을 때의 변화는 파격적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디자인 지론인 수직적 친화력이다.

9-W210
1995년에 등장한 W210 E클래스. 세대를 넘을 때의 변화는 파격적이다/제공=벤츠

지금 벤츠 디자인 역사상 최연소로 수석 디자이너에 오른 고든 바그너는 ‘관능적인 수수함과 순수주의적인 형태’(Sensual Purity and purist Forms)라는 디자인 언어를 통해 벤츠의 변신에 앞장선다. 마치 브루노 사코가 게르만식 엔지니어링에 갇힌 벤츠를 미적 감각이 넘치는 숙녀로 변화시켰듯이 말이다. 그런 점에서 기아 2세대 K5는 수직적 친화력에서 실패한 모델이다.

신형 K7은 상대적으로 성공에 가깝다. 고든 바그너 시대의 벤츠는 그 어떤 시대보다도 젊고 우아하게 변했다. 그럼에도 세그먼트별 디자인 차별화가 소극적인 이유로 혹평을 받아야 할까? 아니다. 이들의 상술은 아주 교묘하다. S클래스의 프리미엄 유전적 요소를 대물림 받은 C클래스는 레드오션인 D세그먼트에서 가장 비싼 값으로 팔린다. 제값을 받으며 팔겠다는 배짱이다. 이런 자신감은 그들의 역사적 전통의 자부심으로 정당화된다.

여타 세그먼트의 디자인과 차별성 없는 E클래스의 등장으로 드러난 고든 바그너의 패밀리룩 철학은 브루노 사코의 수평적 친화력에 대한 ‘오마주’라고 해석해야 옳다. 브루노 사코가 1970~1980년대 디자인으로 벤츠의 부흥을 이끌었듯이, 현 시대에는 고든 바그너가 그 역할을 잇는다. 선각자의 위대한 업적을 컨템포러리 디자인에 반영하는 유물론적 가치도 띄고 있는 셈이다.

Gorden Wagener
벤츠 디자인 역사상 최연소로 수석 디자이너에 오른 고든 바그너. ‘관능적인 수수함과 순수주의적인 형태’라는 디자인 언어를 통해 벤츠 변신에 앞장선다/제공=벤츠

벤츠의 자부심이 반영된 보수성은 디자인에서도 이어진다. 프리미엄의 가치를 만드는데 보수성은 중요한 요소다. 변화에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에 진부한 결과라고 실망한다면, 스스로 시각적 공해에 너무 시달리지 않았나 되짚어보시라. 자극적이지 않다고 푸념하는 일은 유구한 역사의 헤리티지를 디자인에 반영하는 프리미엄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이젠 대중차 브랜드들도 라디에이터 그릴과 주간주행등 디자인에 관용성을 부여해 패밀리룩을 벤치마킹한다. 세대는 고사하고 세그먼트 사이에서도 관용성은 쉽게 소비된다. 참을 수 없기에 가볍기도 하다.

브루노 사코와 고든 바그너의 수평적 친화력은 변화가 없어 심심해 보일지 몰라도 진중하다. 하나의 디자인 언어를 전 세그먼트에 반영한다는 사실은 창조의 가치에 무게감을 싣는 행위다. 그렇다고 진부할까? 수직적 친화력 앞에서 진부는 없다. 혁신적인 보수란 바로 벤츠 같은 브랜드를 일컫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