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WINE 호주 대표 와인 '펜폴즈 그랜지' 프랑스 제치고 70년대産 1위

펜폴즈 홍보대사 이완 프록터 방한
70년대 톱40위에 펜폴즈 4개 이름 올려
한국서 100만원대 그랜지 1000병 동나

기사승인 [2016-01-1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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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고급 와인을 대표하는 펜폴즈(Penfolds)의 글로벌 홍보대사 이완 프록터.


모빌리스타 김태진 에디터 = 호주 고급 와인을 대표하는 펜폴즈(Penfolds)의 글로벌 홍보대사 이완 프록터(Ewan Proctor)가 지난해 12월 수입사인 롯데주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세계 최고의 1970년대 와인 선정에 대해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1970년대산 와인 가운데 ‘펜폴즈 그랜지 1971’이 1등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뒤로 넘어갈 뻔 했어요. 수 백만원이 넘는 프랑스 5대 샤또부터 브르고뉴를 대표하는 로마네 꽁띠까지 역사상 최고 와인 과 겨룬 결과 아닙니까.”

지난해 9월 유럽의 유명 출판사인 ‘파인(FINE)’과 웹사이트 테이스팅북닷컴(tastingbook.com)은 1970년대 생산한 와인을 대상으로 세계 40대 와인을 뽑았다. 1위에는 예상을 뒤엎고 호주를 대표하는 고급 레드 와인인 펜폴즈 그랜지 (Grange) 1971년산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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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폴즈 빈야드와 양조장.


이 와인은 100점 만점 중 98.5점을 받았다. 프랑스의 특급 스위트 와인인 쏘테른의 ‘샤또 디켐 1975’이 98점으로 2위에 올랐다. 프랑스 론 지방의 레드 와인 ‘기갈 라 물린 1976’이 97.5점으로 3 위를 차지했다. 이 행사는 눈을 가리고 시음하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진행됐다. 9개국에서 선정된 와인 전문가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총 50만 달러(약 5억9천만원) 상당의 1970년대 와인들이 세계 각지에서 공수됐다. 상위 10위 가운데 8개를 프랑스 와인이 휩쓸었다.

프록터 홍보대사는 “전문가들은 오래 보관이 가능한 우수한 숙성력을 지닌 프랑스 특급 와인이 선정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펜폴즈 그랜지’였다”고 말문을 연다. ‘펜폴즈 그랜지 1971년’은 병당 1500 달러(약 180만원)를 호가한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진행됐고, 심사위원도 여러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한쪽으로 평가가 치우칠 가능성은 없었다. 호주 와인이 프랑스 와인과 나란히 경쟁하고, 더욱이 1위에까지 오른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다.” 심사위원들은 그랜지 레드 와인이 훈제한 고기와 다크 초콜릿과 잘 어울리며 12.3%의 상대적으로 낮은 알코올 도수로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랜지는 2001년 호주 문화재에 등재됐다. 이어 프랑스 와인을 제외하고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로버트 파커와 와인 스펙테이 터에서 동시에 100점 만점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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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록터는 와인과 음식에 모두 정통한 전문가다.


이밖에 호주 와인으로는 펜폴즈 그랜지 1976이 14위, 펜폴즈 그랜지 1972가 25위, 펜폴즈 그랜지 1970이 36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미 ‘펜폴즈 그랜지 1971’은 독보적인 와인으로 평가를 받았다. 지난 1979년 파리에서 열린 ‘고-미요(Gault- Millau) 와인 올림피아드’에서 최고상을 받아 프랑스 와인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처음 이 와인의 이름에는 에르미타쥐(Penfolds Grange Hermitage)가 붙었다. 프랑스 북부 론의 와인 생산지인 Hermitage에서 이름이 겹친다는 항의에 그랜지로 바꾸었다.

프록터는 “40위 안에 든 와인 가운데 70% 이상이 프랑스産일 정도로 압도적으로 우세했다”며 “펜폴즈가 무려 4개나 이름을 올려 호주가 세계 최고 와인산지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설명한다. 펜폴즈 그랜지는 연간 약 6만병 정도 생산된다. 한국에서 연간 1000병이 판매된다. 최신 빈티지인 ‘그랜지 2011’의 국내 가격은 120만원 전후다.

그는 한국 와인 시장에 대한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2000년 이후 아시아 와인 시장의 성장률이 가장 높았다. 그 가운데 한국이 단연 주목을 받는다. 연 평균 두 자릿수 성장했다. 더구나 100달러(약 12만원)가 넘는 고가 와인 비중이 크다. 선진국 시장이 중저가인데 비해 한국은 고급 와인이 잘 팔리는 특징이 도드라진다. 고급뿐 아니라 5만~10만원 대의 중저가 라인 업을 보유한 펜폴즈가 성장 가능성이 큰 이유다.”

프록터는 지구 온난화가 와인 재배의 위험 요소로 등장한다고 말한다. “최근 10년간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수확시기가 빨라지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펜폴즈는 이런 위험 요소를 회피하기 위해 남 호주의 서늘한 지역의 포도밭 매입을 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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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펜폴즈 테이스팅 룸.


프록터는 와인과 음식에 모두 정통한 전문가다. 1999년 ‘올해의 레스토랑’을 수상한 시드니의 아이콘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았다. 2002년에는 이탈리아 제노바대학에서 홍보·국제관계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 멜버른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수석 소믈 리에로 일하면서 야라 밸리 와이너리의 와인메이커 경력을 쌓았다. 2013년 펜폴즈 와이너리에서 운영하는 ‘맥길 레스토랑’의 수석 소믈리에로 이직, 펜폴즈 와인과 음식의 매칭을 전담하고 있다.

펜폴즈가 와인 애호가를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리콜킹 클리닉’(15년 이상 된 올드 빈티지 와인의 상태를 조사한 뒤 코르크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클리닉 서비스)의 멤버다. 그는 펜폴즈의 리콜킹 클리닉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리콜킹 클리닉은 수석 와인 메이커가 콜렉터들이 수집한 빈티지 와인의 코르크를 열어 직접 상태를 체크하고, 다시 코르킹을 해 품질을 인증해주는 무료 행사다. 1991년 시작해 20년 이상 지속 됐다. 지금까지 유럽·미국·홍콩·호주에서 열려 12만 병이 넘는 오래된 펜폴즈 와인이 정비됐다. 전 세계 와인 애호가를 만나고 와인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는 기회다.”

펜폴즈 와이너리
1844년 영국의 의사였던 크리스토퍼 로손 펜폴즈가 부인인 메리 펜폴즈와 함께 호주 애들레이드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병원을 개업하면서 이름을 영국에서 살던 집의 애칭인 ‘더 그랜지(The Grange)’라고 지었다. 아울러 100ha 규모의 대지에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가져온 포도 표목을 이식해 포도밭을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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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폴즈 그랜지 테이스팅을 위한 코티지.


펜폴즈는 와인이 의학적 효능이 있다는 것을 터득하고 치료용으로 주정강화 와인 (Fortified Wine)을 직접 생산한다. 와인을 약으로 마시고 효과를 본 환자들이 점점 진료보다 와인을 구입하러 병원을 찾았다. 자연스럽게 펜폴즈 와이너리가 태생했다.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인 ‘1844 to evermore’라는 와이너리 슬로건도 이때 생겼다.

1870년 펜폴즈가 세상을 떠나고 부인 메리가 와이너리를 이어 받으면서 전성기를 누린다. 1896년까지 메리가 운영하는 동안 펜폴즈는 파티용뿐 아니라 달콤한 귀부와인까지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면서 남호주 와인의 30% 이상을 점유하는 거대 와이너리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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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폴즈 그랜지 배럴.


메리의 뒤를 이어 사위인 토마스 프란시스코 하일랜드가 와이너리를 경영할 때는 당시 유행한 포트와인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 바로 사 밸리, 맥라렌 베일, 그리고 헌터 밸리 등에서 포도를 생산하면서 와이너리 규모를 키웠다. 1950년대에는 확연히 바뀐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테이블 와인 생산에 중점을 둔다. 고급 화이트 와인인 야타나 샤르도네 (Yattana Chardonnay)가 1995년 출시됐다. 호주 와인 의 역사였던 펜폴즈 와이너리는 1976년 펜폴즈 가문을 떠났다. 이후 여러 번 경영권이 바뀌었지만 ‘호주 명품’ 타이틀은 줄곧 지켜왔다. 현재 펜폴즈는 호주 1위 와인 회사인 ‘트레저리와인 에스테이트’에서 소유하고 있다.

그랜지를 탄생시킨 장본인
Max Schubert
펜폴즈 그랜지는 천재 와인 메이커인 맥스 슈버트(Max Schubert)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1930년대 심부름꾼으로 펜폴즈 와이너리에 입사한 슈버트는 수완 이 좋았다. 포도밭 관리로 인정을 받았고 2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 와인메이커가 됐다. 그는 1949년 주정강화 와인 제조법을 배우러 스페인과 포루투칼로 출장을 갔다가 귀국 길에 프랑스 보르도의 특급 와이너리인 샤또 라피트 로칠드, 샤또 라투르, 샤또 마고를 방문한다. 여기서 고급 와인의 숙성력에 매료됐고 호주에 돌아와 수 십년간 저장 가능한 숙성력 을 지닌 고품질 와인 제조를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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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아들레이드 펜폴즈 와이너리에 있는 천재 와인메이커 맥스 슈버트의 초상.


그는 귀국 즉시 특급 와인 제조에 매달렸다. 1951년 펜폴즈 그랜지 첫 빈티지를 실험적으로 양조한다. 쉬라즈 품종으로 미국 오크통 숙성까지 양조의 처음과 끝을 직접 관리했다. 이렇게 탄생한 펜폴즈 그랜지는 장기숙성 잠재력, 균형감, 미각의 집중도 등 와인을 느끼는 여러 측면에서 혁신적이었다. 하지만 출시 초기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했다. 1957년 펜폴즈 경영진은 그랜지 생산을 중단했다. 이후 슈버트는 비밀리에 1957년, 1958년, 1959년 빈티지를 생산한다.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랜지 1955 빈티지가 호주 와인 대회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생산금지가 해제됐다. 1962년 이후 1955년 빈티지는 몇 년 동안 각종 대회에 서 50여개 이상의 금메달을 수상했다. 롯데주류 펜폴즈 담당 진백서 대리는 “1995년 미국의 저명한 와인 전문 잡지 와인 스펙테이터는 올해의 레드 와인으로 ‘그랜지 1990’을 선정했다. 슈버트는 죽기 전에 ‘그랜지 1971년은 독보적이다. 내가 생산 한 최고의 와인’이라고 손꼽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