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 미국 디트로이트 빅3 실리콘 밸리에 무너질까

2016 CES IT산업이 자동차 전략적 동반자 각인
애플 구글 무인차 주도권

기사승인 [2016-02-1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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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쇼가 아니다. 세계 최대 가전쇼인 CES의 주인공이 자동차로 바뀌고 있다/제공=폴크스바겐


모빌리스타 박상원 칼럼니스트 = 2016년 CES에는 9개의 완성차 업체와 115개 관련업체들이 참가했다. 전시공간은 지난해보다 25% 더 늘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자동차 또는 콘셉트카는 웬만한 중견급 모터쇼만큼 많았다. CES의 C가 Consumer가 아닌 Car가 아니냐는 농담이 언론에서 나올 정도였다.

미국 가전쇼(CES, Consumer Electronics Show)가 마침내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되었다는 사실을 절감한 때는 2016년 1월 8일 CES 마지막 날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맥카란 공항 카운터에서 일이다. 디트로이트를 간다는 사실을 안 델타항공 직원이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방문하는지 물었다. 도박과 유흥의 도시 공항 직원이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언급하니 흥 미로웠다.

“CES를 보고 연달아 모터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가보죠?”라고 물었다. 직원은 “그럼요. 폴크스바겐 직원들이 아주 많더라고요”라고 답했다. 디젤 게이트로 정신 없을 폴크스바겐이 그런 와중에서도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해나가고 있다니 감탄스러웠다. 직원의 말이 이어졌다. “CES와 디트로이트의 모터쇼 일정이 잘 맞네요. CES를 보고 디트로이트를 가서 연달아서 업무를 볼 수 있으니 편하겠죠?” 그의 말은 맞았지만 과거에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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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쏘울 EV 자율주행 자동차. 현대기아차 그룹도 해마다 CES에 꾸준히 참가한다/제공=기아자동차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동차 산업은 IT를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service provider)로만 여겼다. 1990년대 중후반 이후 냅스터· 애플·아마존이 각각 음악·영화·소매산업까지 변화시키면서 IT산업은 다른 산업들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 넓혀갔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마침내 IT는 자동차 산업을 본격적으로 조준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자동차 실내에도 IT 기능을 원했기 때문이다.

4~5년 전부터 자동차 산업에서 이상한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완성차 업체 임원들이 두 이벤트 일정이 중복되는 바람에 출장이 어렵다는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한 이벤트가 일정을 바꿔야 하는 처지가 됐다. 1899년 시작한 디트로이트 모터쇼가 1967년부터 열린 CES에게 일정을 양보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앞으로 자동차와 IT 산업간의 관계가 평등하지 않으리라는 신호탄이었다.

Audi at the CES 2016 Las Vegas
아우디 부스. 2016 CES에는 모두 9개 완성차 업체가 참가했다/제공=아우디


2016년 CES는 어떠했는가? 거의 모든 언론매체들이 금년도 CES의 비공식적인 전시 주제로 드론·가상현실·무인차를 뽑았을 정도로 자동차는 주요 화두였다. 도요타·폴크스바겐·현대기아차· 벤츠·아우디·BMW 등 총 9개의 완성차 업체, 그리고 자동차 산업에서 공급업체로 활동 중인 115개 IT 업체들이 참여했다. 전시공간은 지난해보다 25% 더 늘어서 CES의 C가 Consumer가 아닌 Car가 아니냐는 농담이 언론에서 나올 정도였다.

2016 CES에 서 처음으로 발표된 자동차 또는 콘셉트카가 웬만한 중견급 모터쇼만큼 많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GM은 자사 역사상 처음인 여성 CEO 매리 바라 회장이 등장해 첫 EV 대중차인 볼트를 선보였다. 중앙에 12인치 LCD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계기판도 LCD를 사용한다. 다수의 카메라를 통해 주변 360도를 보는 기능도 갖췄다. 일반 충전기로는 9시간 동안 100% 충전이 가능하고 300km를 주행할 수 있다. 미국내 정부 보조금을 지원 받으면 3000만원대로 구입 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전세계 언론은 역사적인 제품이라고 흥분했다.

Chevrolet Unveils 2017 Bolt EV at CES
GM의 여성 CEO 메리 바라는 자사의 최신 전기차인 볼트 EV를 소개하고 있다/제공=GM


한편 한국의 대표적인 가전업체인 LG전자가 디스플레이는 물론 배터리·모터 등을 개발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만 알려진 듯했다. GM은 CES 직전에 우버의 경쟁사인 리프트에 5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사실을 밝혀 자율주행차의 미래를 적극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디젤 게이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폴크스바겐 그룹은 보다 적극적인 CES 참여로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하는 듯했다. 세계 최초로 버디(BUDD-E)라는 전기차 전용 미니밴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폴크스바겐은 버디를 1960년대에 특히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 를 끌었던 캠퍼의 후계라고 홍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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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 게이트로 이미지가 추락한 폴크스바겐은 전기차 컨셉트 버디로 친환경 이미지 회복에 나섰다/제공=폴크스바겐


버디는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MEB(Modular Electric Platform)를 기반으로 한다. 외관 디자인 또한 군더더기가 없이 매끈해 마치 애플의 제품 디자인 철학을 보는 듯했다. 실내에는 각종 첨단장비를 가득 담아 당장 출시하면 큰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다만 출시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3년 정도 후에 유사한 차종이 전기차 모델은 물론 소형 엔진을 얹은 하이브리드 형태로 선보이지 않을까 예상한다.

버디보다 더 흥미를 끈 사실은 폴크스바겐 전시장 벽면에 인쇄된 폴크스바겐과 LG의 협력 관계였다. 버디의 프리젠테이션 중에 공개된 것으로 ‘커넥티드 홈(Connected Home)’이라는 개념 구현에 LG가 함께 한다. 주행 중에 차내 장비를 통해서 집안에 있는 냉장고 안에 있는 식료품의 숫자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다.

Audi at the CES 2016 Las Vegas
아우디를 비롯해 주요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아키텍처 개발에 적극적이다/제공=아우디


3년 이후 나올 약간은 먼 미래의 제품을 선보인 폴크스바겐과 달리, 같은 그룹 소속인 아우디는 당장 내년에 나올 기술을 선보 였다. 신형 A8에 도입할 버츄얼 대시보드는 이미 2014년 CES에서 공개한 버츄얼 콕핏의 발전형이다. 계기판을 포함 세 곳에 OLED 디스플레이를 채용해 물리적인 버튼의 사용을 최소화 했다. 동시에 보다 많은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특히 중앙에 위치한 14.1인치 디스플레이는 뛰어난 선명도와 곡면을 적용했다.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몰레드 디스플레이였다(확인해 보니 삼성 제품이었다). 본 화면을 통해 네비게이션·오디오 세팅 등 기능을 구현한다. 바로 밑에 위치한 또 다른 디스플레이는 온도 조절 기능을 한다. 이 디스플레이는 특이하게도 필요할 경우 필기로 명령을 입력할 수 있다. 스마트폰 화면에서도 구현되는 각종 손동작을 사용한다. 더 나아가 진짜 물리적인 버튼처럼 촉감 피드백을 적용해 사용이 편리하다. MIB2+라고 부르는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직접 체험하니, 실리콘 밸리에서 IT 기술을 가장 잘 적용하는 완성차 업체로 단연 아우디를 꼽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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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전기차업체 패러데이 퓨처는 전기 스포츠카 콘셉트카를 선보였다/제공=패러데이 퓨처


새로운 자동차 업체도 등장했다. 베일에 쌓여있던 패러데이 퓨처 가 선보인 전기차 콘셉트카 FFZERO1은 회사의 이해도를 높여주기보다는 오히려 신비감을 더했다. 이런 슈퍼카는 회사 수익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단순히 회사의 존재를 드러내는 역할이 더 크다. 실리콘 밸리와 디트로이트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이 회사가 단순한 업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패러데이 퓨처가 애플의 자동차 개발에 외주업체로 적극 참여한다는 소식뿐만 아니라, 사실은 숨겨진 애플의 전기차 사업부라는 주장까지 흘러나온다. 얼토당토 않은 슈퍼카 콘셉트는 사실 애플이 ‘One more thing’이라는 놀라운 제품을 발표하기 전까지 경쟁자들을 혼란시키기 위한 전략이 아닌가 싶다. 애플이 원래 신제품 개발에 있어 깜짝 위장술 을 많이 사용했음을 기억하면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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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자율주행 시연 콕핏에서 참가자들이 자율주행을 체험하고 있다/제공=기아자동차


2016 CES는 IT 산업이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전략적인 동반자가 됐다는 사실을 보여준 변곡점과 같은 역사적인 이벤트였다. 지난 100년 이상 자동차 산업의 구조에서 보듯, 통상 완성차 업체와 공급업체 간의 관계는 대체로 갑을 관계다. 공급업체들은 자동차 개발 경험이 더 많은 완성차 업체들에게 명령을 받아 이행하는 일이 관습이다.

자동차의 IT화는 IT 분야에서 역사가 더 긴 IT 업체들이 훨씬 더 유리하다. 따라서 앞으로 완성차 업체와 IT 업체 간의 관계는 수평적일 것이다. 애플이 전기차를 선보이는 시점인 2019년쯤에는 어쩌면 IT업체가 더 월등한 위치로 올라갈 지도 모른다. 이미 테슬러가 그러하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해보니 앞으로는 CES가 끝난 직후 라스베이거스에서 디트로이트로 가는 항공편 숫자가 훨씬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